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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작성자대학신문방송국  조회수778 등록일2023-05-16

대학 4학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전통건축을 주로 공부하던 ‘동양건축사’ 성적을 참담하게 받았고 나는 그 결과에 수긍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의 산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산사를 많이 둘러보았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굴뚝과 문살 등 전국 사찰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모습들을 흑백필름에 담으면서 누구보다 ‘동양건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답안지에 교과서에 나오는 한옥 부재의 명칭을 제대로 적지 못했다고 점수가 낮다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판되기 전에는 몇몇 전공서적들 외에는 국내여행을 위한 안내서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같은 책들이 나오면서 우리는 장소가 품고 있는 기쁨과 슬픔, 오랜 기간을 거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승용차의 폭발적인 보급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답사 붐이 일어났는데 이 책이 그 일등공신이 아닌가 싶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제개발에 전 국민이 매진하던 때에는 놀 시간도 놀 곳도 없었다. 정부에서는 설악산이나 경주(보문단지), 제주(중문단지) 등에 관광지를 조성하였고 어린이들의 꿈은 유명한 관광지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는 문화유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 책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사실 이 책은 2권부터 읽었다. 어느날 서점의 매대에 놓인 책을 보다가 부제에 눈이 갔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산이 강을 넘지 못하는 것인지, 강이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떠나 강도 산을 넘지 못해 돌아서 흐르고, 산도 강을 넘지 못해 줄기가 끊어져 있지 않은가? 3권의 부제는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이다. 역사는 연인과 같아 말하지 않아도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가 그 정점을 넘어갈 때 지인들과 경주를 찾았다. 경리단길의 이름을 본딴 황리단길이 가장 핫하다고 해서 거리를 걷고 커피를 마셨지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마침 감포로 식사하러 가는 길에 감은사지에 들렀다. 주변은 조금 정돈이 되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그곳을 지켜온 석탑과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품었던 절터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마음의 평안을 넘어 약간의 흥분까지 내게 주었다. 굳이 문무왕의 호국정신이나 만파식적과 같은 전설을 기억하지 않아도 30여년 전에 혼자 찾아와서 몇 시간을 앉아있던 기억은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