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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기고글-우리 대학 언론의 역사를 돌아보며

작성자한밭대신문사  조회수464 등록일2021-12-28

내가 현암캠퍼스에 아침을 들여 놓은 것은 봄빛이 무르익기 전이었다. 학문적 열정과 젊음이 가슴 속에 가득 차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해에는 김일성 사망과 지존파 사건, 성수대교 붕괴로 어수선한 사회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개방대학 체제였던 대전산업대학은 인적, 재정, 시설 등 모든 면에서 일반대학에 비해 차별을 받던 시기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해, 개방대학 개혁방안 논란이 확산되더니 이듬해에는 교육부와 상공부가 개방대학 설치운영규정을 개정함으로써 학생들이 수업 전면 거부를 결의하고 거리로 나서는 등 교육부와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교육정책을 따라야 하는 대학본부 측과 개방대학의 불이익을 시정하려는 학생자치기구 및 교수회 측의 갈등도 심화되는 추세였다. 그러한 가운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중지를 모으는 노력도 이어졌다. 덕명캠퍼스로의 이전을 위해 7월에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교명변경을 위한 여론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듬 해 11월 개최된 교수회에서 한밭대학교가 아닌 충청대학교로 교명을 채택하기로 한 적도 있었다.

내가 학교 도면에도 없는 대학신문사 건물에 입사했을 때, <대전산대신문>은 대학에서 주목받는 언론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 매체가 없던 시기로, 학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거나 홍보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은 대학신문이었다. 그러기에 2주마다 발행되는 신문을 기다리는 구독자도 다수 존재했다. 신문의 제호도 잦은 교명변경과 함께 <독서신문>으로 출발하여 <대전공전학보>, <대전공대학보>, <대전개방대학보>, <대전공대학보>로 이어지고 있었다. TIBS 호출부호를 가지고 있던 방송국은 음악방송 위주로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으며, 대동제 개막행사로 개최하던 대학가요제는 가장 인기 있는 대학행사였다. 그러나 당시 교직원들이 학생자치기구나 대학신문방송국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여전히 한국대학총학생회 연합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념과 주장을 관철하려 활동하고 있었으며, 학내에도 군부독재에 맞서던 대항언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현실과 이념의 지향성 충돌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 전통을 이어오던 현암문화교지가 진통 끝에 3년 만에 합본호로 발행되고, 새로운 덕명교지가 창간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각 대학마다 대학언론 통제의 주인공은 현수막에 이름을 올리거나, 언론사 행정실 입구가 폐쇄되고 주변이 붉은 글씨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밀고 당기는 시간 속에 학생들은 격주로 밤을 새워가며 신문을 제작했고, 대학언론은 발전을 이어갔다. 인쇄공이 원고 내용에 따라 활자를 맞추고, 문장을 이어가며 제작하던 신문이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지면도 한결 깔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은 밤을 지새우며 신문을 제작했고, 발행 후에는 신문에 대한 평가와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덕명캠퍼스로 대학이 이전하고, 한밭대학교로의 교명변경과 함께 <한밭대신문>으로 제호도 바뀌었다. 제호는 컴퓨터의 다양한 서체들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서예가 서석 박일규 동문의 서체를 받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십여 년 전부터는 매킨토시 컴퓨터가 보급되어 활자체를 변경하거나 편집하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고, 최근에 보급된 다양한 편집디자인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이 직접 인쇄소로 가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또한, 대판형식에서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지면 크기를 변형하며 독자층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송국 또한, 오디오 중심의 방송체제에서 이제는 영상콘텐츠 중심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매주 주제를 설정하여 대본을 쓰고, 영상을 촬영하고, SNS에 탑재하고 있다. 방송제 또한, 직접 창작하고 연출한 영상콘텐츠를 상영하는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이는 바로 SNS에 탑재되어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영자신문 <THE HANBAT HERALD>가 발행된 것은 20092월이었다. 예산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그동안 영어학과에서 소식지로 발행되던 것을 대학신문방송국으로 편입시켜 이제는 27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대학신문방송국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나도 흰머리가 늘어 현암캠퍼스에 들여 놓았던 아침 햇살을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다. 이제는 개방대학이니, 산업대학이니 하며 불이익의 논쟁을 벌이던 시대는 가고, 한밭대학교는 중원의 명문대학이 되었다.

아마 내가 떠난 이후에도, 9시 등굣길에 대학방송국에서는 아침방송이 흘러나오고, 주기적으로 사람들은 국자신문이나 영자신문을 구독하게 될 것이다. 5월에는 대학가요제로 시선을 모으고, 10월에는 방송제, 11월에는 한샘문학상을 공모하는 등 대학신문방송국은 계속하여 대학문화 창달에 기여할 것이다. 매년 실시하는 한샘문학상이란 명칭이 1991년 초반까지 이어오던 국자신문사 기자들의 모임인 한샘회에 기원한 것임도 밝혀 둔다.

그동안 따뜻한 시선으로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동고동락했던 많은 학생기자 및 국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글 이대영(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