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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521호] 기고글-‘공정’한 사회, 이룰 수 없는 목표일까?

작성자한밭대신문사  조회수502 등록일2021-12-28

최근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바로 공정이다. 공정은 사전적 의미로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로 우리는 공정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먹잇감을 가지고 싸우거나, 모두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할 때 우리 공정하게 가위바위보 하자’, ‘공정하게 하나씩 나눠 갖자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국가의 부를 배분하고 희소성을 가진 재화를 분배할 때 우리는 공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가치가 붕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에서 그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청년세대는 입시, 고용 등 좁은 문턱을 수 없이 넘어야 하는 세대이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청년세대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로 공정의 붕괴를 지적하고 있다. 왜 청년세대는 공정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할까?

첫째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반세기도 안되는 시간 동안 급속도로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부정부패와 관습으로 통용하는 채용, 입시 비리를 비롯해 인간 관계에서 쌓인 정으로 포장한 불공정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저성장 침체기에 빠진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은 더욱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청년세대는 바늘구멍 같은 문턱을 넘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쓰라린 좌절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을 기득권과 부모 찬스로 짓밟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둘째 불공정을 극복할 해법을 기성세대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당시에도 불공정 해소는 우리 사회의 주요 키워드였다. 이 청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청사진이었다. 특히, ‘공정에 목마른 청년세대가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인해 청년세대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불공정한 이전 정부를 심판하고 적폐를 심판하겠다던 정부였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고위 관료가 연루된 사건이자 이전 정부의 불공정에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던 세력이 자신들의 불공정은 덮기 급급한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였다. 진보와 보수로 불리는 정치 세력 모두, 해법이 아닌 선택적 정의를 통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불공정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 전체의 뿌리박힌 암 덩어리였던 것이다.

최근, 정치권은 과거를 반성하며 무릎을 꿇고 사죄하거나, 청년 보좌관, 청년 비서관을 신설하는 등 눈에 띄는 청년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올바른 현상이다. 그러나 청년세대가 바라는 것은 청년과 같이 가는 척하는 쇼맨십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재의 뿌리 깊은 관습을 과감히 청산하는 리더십이다. 그 중에서도 공정이라는 가치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성실한 일꾼을 기대하고 있다.

공정은 어렵지 않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 어렵지 않은 문제를 우리는 못 푼 것이 아니라 안 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청년들이 영끌, 빛투를 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 ‘공정규칙보다 특권반칙을 동경하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보았다면 기성세대는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세대도 처절하게 각성해야 한다.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부탁이 아닌 명령을 해야 한다. 우리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향후 5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이다. 우리는 청년세대의 명령을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성실히 이행하는 일꾼을 가장 공정한 방식인 투표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막연한 희망일 수 있지만,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202239일이 공정이라는 가치가 바로 세워지는 분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임예성(경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