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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어보, 고향으로 돌아오다

작성자한밭대신문사  조회수622 등록일2020-04-20


외국으로 무단 유출되었던 국새 대군주보와 어보 효종어보가 다시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219, 조선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문화재 두 점을 지난해 12월 기증받아 국내로 환수했다고 밝혔다. 기증자인 재미교포 이대수(84) 씨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1990년대 후반에 이 두 유물을 매입했고, 유물들이 대한민국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국으로의 기증을 결심하였다고 전했다.

국새인 대군주보는 높이 7.9, 길이 12.7, 무게 4.1의 도장으로, 은으로 도금한 거북 모양 손잡이를 가지고 있다. 서체는 구첩전(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전서체)을 사용한다. 제작 시기는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등을 근거로 1882년으로 추정 중이며, 188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까지 사용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대군주보 이전까지 조선은 명과 청에서 조선국왕지인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으나 고종의 명으로 ()조선국대군주라는 글씨를 새긴 대군주보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라는 글자는 천자만이 쓸 수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보아 국새 대군주보는 자주독립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보인다.

어보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을 지칭한다. 효종어보는 높이 8.4, 길이 12.6, 무게 4.0으로 금빛의 거북 모양 손잡이를 가진다. 대군주보와 함께 돌아온 것은 1740년 영조가 효종에게 명의정덕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된 것이다. 효종어보는 총 3점이 제작되었는데, 효종 승하 직후인 1659년에 시호를 올리고 1740년과 1900년에 존호를 올릴 때마다 제작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1900년에 제작한 어보(국립고궁박물관 소장)만 전해 내려오고 있었지만, 이번에 환수된 효종어보를 더해 총 두 점을 소유하게 되었다. 1659년에 제작된 어보는 여전히 행방이 불분명하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 219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자의 아들 이성주 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언론에 첫 공개를 마친 뒤 20일부터 3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조선의 국왕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했다

글 현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