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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꿈을 쫓는 한 해, 그 끝에서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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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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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이 지났다. 21살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이상하리만큼 낯설기만 하다. 2025년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진 한 해였다. 머릿속을 헤집어오는 취업에 대한 걱정은 역설적으로 내게 꿈과 취미를 강요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혼란은 대2병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정리됐다.대2병,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에 해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학업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도전과 포기를 반복했다.1학기에 접어들어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이 학과가 나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학과를 졸업한 이후의 나를 떠올리는 일이 두려웠다. 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불안을 키웠다.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해의 기저에 깔려 있었고, 현실보다는 꿈을 좇게 만들었다. 눈앞에 놓인 성적보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가능성을 바랐다.이 불안이 그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요청한 교수님과의 상담이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수님은 단계가 있다면 아직 1, 2단계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9단계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어차피 해야만 하는 단계를 그저 미뤄두고,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그 말은 도망치듯 미래를 상상하던 나를 현재로 되돌려 놓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답이 아니라, 눈앞의 단계를 성실히 밟아가는 일이었다. 학점과 자격증, 대외활동을 하며 꿈을 견고히 하는 일이었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2025년은 꿈을 좇는 한 해였다. 2026년에는 꿈을 지키기 위한 현실을 마주할 차례다.글 박희진 수습기자
등록일
2026-01-07 13:40:02
[555호] 2025년, 마지막 학년으로 보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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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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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대학교 4학년으로서 학업과 개인 일정을 동시에 마무리해 나간 해였다. 한 해의 중심에는 캡스톤디자인과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여행과 문화생활, 생활 환경의 변화가 이어졌다.3월,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며 캡스톤디자인 수업과 실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팀 프로젝트로 진행된 만큼 주제 선정과 실험 설계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3월부터 시작된 캡스톤디자인은 11월까지 성과를 내야 했지만 실험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8월에 기존 연구 주제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일정을 다시 조율하여 실험을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제한된 시간 안에 실험을 마무리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팀원들과 역할을 나누어 실험을 진행했고, 12월 초 최종 발표를 마쳤다. 이후 12월 중순까지 팀플 논문을 제출하며 캡스톤디자인 과정을 마무리했다.학기 중간중간에는 여행과 문화생활을 병행했다. 2월에는 일본 오사카, 후쿠시마, 돗토리를 방문했고, 같은 달 뮤지컬 를 관람했다. 4월 중간고사 이후에는 를 보며 학업 외의 시간을 보냈다.학업과 일상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기 위해, 그리고 더 넓은 세계를 직접 마주하기 위해 도쿄로 향했다. 대전과 달리 빠르게 흐르는 도시와 낯선 풍경은 익숙함 속에 굳어 있던 시선을 자연스럽게 흔들어 놓았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시간은 휴식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 후에는 그 여운을 동력 삼아 자격증 시험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2025년은 눈에 띄는 성과보다는 정해진 과정을 끝까지 수행하는 데 집중한 해였다. 캡스톤디자인 주제 변경 이후의 실험부터 졸업을 위한 논문 제출, 학기별 시험과 졸업을 앞둔 준비까지, 계획을 수정하며 주어진 일을 마무리해 나갔다. 이 한 해는 경험과 성취가 맞물리며 개인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결과보다 과정이 더 많이 남은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글사진 김나연 기자
등록일
2026-01-07 13:39:26
[555호] 완벽하진 않았지만, 성실함으로 채운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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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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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돌아보며 무엇을 이뤘나라고 묻는다면, 거창한 성과보다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하루의 반복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학기 중에는 매주 2~3개의 과제를 해내며 수업을 따라갔고, 아르바이트와 신문사 활동을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정이 겹칠 때면 버겁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주 마감과 책임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점수를 주고 싶다.2학기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팀원들과 함께 브랜딩 책 제작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개인 작업이 아닌 협업 프로젝트였기에 부담도 컸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경험은 올해 가장 인상 깊은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일상생활 속에도 작은 성취가 있는데, 1년 동안 주 2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이어갔다. 원래 운동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조금씩 강도를 늘려가면서 운동하니 일상의 균형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열심히 학교생활을 이어온 만큼, 쉼의 시간도 의미 있게 보냈다. 홍콩과 오사카를 여행하며 다른 나라의 일상과 문화를 직접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시야를 넓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돌아보면 올해의 성과는 특별한 결과물이 아니라, 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쌓아온 시간들에 가깝다. 아직 전공 분야에서 나의 능력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올해 쌓은 경험을 발판 삼아 내년에는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글사진 박유빈 기자
등록일
2026-01-07 13:38:53
[554호] 관성을 깨고 마주한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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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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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정신없이 흘러간 1, 2학년을 지나, 어느덧 3학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 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학교 생활을 상 상했다.그러나 정작 돌아온 것은 관성적인 나날이었다. 매 순간 어제보다 더 나 은 내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수많 은 과제를 마주할 때면 그저 기한 안 에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에만 신경 쓰 게 됐다.이런 하루가 쌓여 습관이 되자, 결국 열정을 잃어가는 삶에 익숙해졌다. 문득, 고학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에서 걱정과 막연한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더 이상 내게 주어진 시 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절박 함이 생겼다. 확실한 것은 5년, 10년 이 지나 지금을 떠올렸을 때에 이 순 간을 후회와 미련으로 남기고 싶지 않 다는 점이다.일상의 변화를 갈망하던 시점에,주 변으로부터 신문사 활동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되었다. 국자 신문사 일은 학 과 건물 안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많 은 사람을 직접 접하고, 다양하고 깊 이 있는 이야기들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라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 만 늘 주어진 일에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국자 신문사의 일원이 되어 활동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그러나 이 불안감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외면한다면, 과거의 안일했던 관성으로 자신을 가두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고민 끝에 용기 를 내어 지원했고, 면접을 거쳐 마침 내 60기 기자가 될 수 있었다.전공 학과 이외의 첫 교내 활동이 국자 신문사였기 때문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이전의 어떤 성 취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첫 교 육 후 업무를 받으면서 이전에는 경험 해 보지 못했던 공동체의 구조와 질서 를 마주하게 되었다. 또한, 세상을 바 라보는 시야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 켜 주었다.신문 제작 과정은 학업적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과는 차원을 넘어선다. 객 관성과 신속성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단순히 국자 신문사가 이름 의 무게를 가져서가 아니라 서로의 엄중한 약속임을 깨달았다. 이 과정 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는 깊은 소속감을 느꼈다. 그저 목표 없이 결과를 만들어내던 과거의 모든 경험을 독자를 위한 사명감이라는 명확한 방향을 가진 새로운 추진력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아직 수습기자로서 부족한 점과 배 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 관 성을 깨고 내딛는 이 주체적인 발걸음 을 멈추지 않겠다. 과거의 흔적이 오 늘의 결과가 되어 모든 학우의 알 권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열정을 담아 아낌없이 모든 노력을 쏟고자 한다. 또한, 만들어내는 결과물 하나하나가 모두를 존중하고 누군가에게는 긍정 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책임감 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다.이 경험을 발판 삼아 학교와 사회 의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재로 성장할 것을 약속한다.나의 모든 목표는 거창한 계획이 아닌, 바로 오늘 하루의 치열한 성실 함에서 시작된다. 매 순간 주어진 임 무를 대하는 성실함이 후회 없는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신문사에서의 치열했던 나날들을 통 해, 먼 미래에 이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청춘이었다고 스스로에 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글사진 황채원 수습기자
등록일
2025-11-12 12:53:59
[554호] 신문사 활동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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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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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자 신문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막상 되돌아보니 어떤 마음으로 신문이라 는 매체에 끌리게 되었는지 모호하다.원래는 신문이라는 매체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나의 관심사 는 문학이었는데, 현실 세계의 일을 다루는 신문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나마 함께 사라져가는 인쇄 매체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대학신문방송국 홈페이지에서 기획면 기사 몇 편을 보고 나서 그 존재 를 인지하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우리 대학에서도 누군가 신문을 만 든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쁘게 대학 생 활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그렇게 잊어 가던 와중 무심코 수습기자 모집을 보고 다시 관심을 가 지게 됐다. 거기엔 글을 잘 쓰고 싶은 학우라면 지원하라고 되어 있었고, 그 한마디에 국자 신문사에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됐다.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글을 쓸 일이 많았다. 에세이나 리포트를 작성하다 보면 처음 마음먹은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실망하는 일도 잦았다.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나의 글에 어딘가 말 못 할 부족한 점들이 있다 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족한 작문 실력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국자 신문사 활동은 기사를 작 성하고 다른 기자들에게 피드백을 받 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신문 기사를 작성하면서 작문 능력의 다양성 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뒤늦게 국자 신문사에 지원하게 됐다.물론 그것뿐 만은 아니었다. 우리 대 학 학우들에게 좋은 기사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학우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찾아 전하고 싶었다.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사익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약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수습기자라는 이름을 얻었다.막상 수습기자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니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 다.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조 금 늦게 활동을 시작한 나에게도 편안 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 리고 신문 기사로만 봐 왔던 국자 신 문사의 활동 뒤에는 지속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바쁜 대학 생활 중에도 시간을 내 회의 에 참여하고 취재 활동에 임하는 모습 은 나에게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기사를 작성하고 나서도 편집 기간 매일 출근해 몇 번씩이나 퇴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자들이 가진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본격적으로 수습기자 활동을 시작 하고 나서부터는 취재를 나가서 예상 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몇 번 씩이나 인터뷰를 거절당하고 마음 졸 이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또한, 취재가 끝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평소 익숙하지 않은 문체 로 글을 작성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수습기자로서의 첫 활동을 해나 가고 있다.여전히 국자 신문사에 지원하면서 가졌던 의문은 그대로인 듯하다. 내가 국자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글을 더 잘 쓰게 될까? 내가 목표한 것처럼 좋 은 이야기들을 학우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 를 바라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활동 하려고 한다.글사진 원지형 수습기자
등록일
2025-11-12 12:52:04
[553호] 작은 실천이 변화를 가져온다: 일주일간 제로웨이스트 실천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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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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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지구의 날을 선언했다. 이후 2009년 4월 22일, 유엔이 공식적으로 지구의 날을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기후변화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주간 동안에는 10분 전국 소등행사, 나무 심기, 탄소 중립 홍보 공연 등 다양한 캠페인과 행사를 펼친다.하지만 기후변화주간처럼 특별한 기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생활 속 작은 습관을 통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자원 순환을 지향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실천이다.제로웨이스트란 거절하기(Refuse), 줄이기(Reduce), 재사용하기(Reuse), 재활용하기(Recycle), 썩히기(Rot)의 5R의 원칙을 실천하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2022년 제77차 유엔총회에서는 환경 보호를 위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매년 3월 30일을 세계 제로웨이스트의 날로 지정했다.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다는 단순한 원칙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말로만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일주일 동안 직접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생활해 보기로 했다.일주일 동안 경험한 제로웨이스트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일회용품을 줄이는 일이었다. 평소 습관처럼 시켜 먹던 배달 음식을 일주일 동안은 끊어 보기로 했다. 편리함은 포기해야 했지만, 버려지는 쓰레기가 훨씬 줄어드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카페에서는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에 음료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텀블러를 매번 챙기는 것이 번거롭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사용해 보니 카페마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음료 값을 할인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돈을 절약할 수도 있었다. 작은 실천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이 기분 좋았다.무엇보다 그동안 무심코 쓰던 소비 습관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단순히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쉽게 지나쳤던 소비 습관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생활 속에서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가 생겼다.이렇게 작은 변화를 시작하니, 제로웨이스트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선택들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달았다.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제로웨이스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들로 실현할 수 있는 목표라는 확신이 들었다.작은 변화, 일상 속 지속 가능한 선택들또 하나 신경 쓴 부분은 음식물 쓰레기였다. 원래 음식에 대한 욕심이 많아 요리를 할 때 항상 양을 넉넉히 만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간 동안에는 먹을 만큼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남김없이 모두 먹을 수 있어서 재료 낭비를 줄임과 동시에 음식물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물론 생활 곳곳에 이미 너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일회용품을 완전히 쓰지 않기는 쉽지 않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실 때,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학교에서 간단히 간식을 챙겨 먹을 때조차도 일회용 컵, 플라스틱 포장재, 비닐봉지 등은 습관처럼 따라왔다. 이런 것들을 모두 피하려고 하면 생활 자체가 불편해지고, 때로는 대체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은 경우도 많았다.일회용품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작은 습관을 바꾸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일주일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는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달 음식을 줄이고, 텀블러를 챙기고, 음식을 먹을 만큼만 만드는 작은 습관들이 모여 생활 속에서 쓰레기가 줄어드는 걸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환경을 생각한 행동이 단순히 지구를 위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소비 습관을 성찰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만족을 느꼈다. 이번 경험은 제로웨이스트가 특별한 사람만의 일이 아닌, 누구나 일상에서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앞으로도 제로웨이스트를 꾸준히 실천하려면 완벽을 바라기보다 작은 변화부터 이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장을 볼 때는 장바구니를 챙기거나 포장이 최소화된 제품을 고르거나 세제를 리필 스테이션에서 구입하는 것처럼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씩 늘려 나간다면, 제로웨이스트는 일주일간의 경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글사진 조혜원 기자
등록일
2025-10-01 12:44:07
[552호] 광복 80주년, 대전의 독립운동가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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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전시는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삶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대전에서 펼쳐졌던 유성장터 시위, 인동장터 만세운동,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의 기록은 그날의 감격을 오늘에 되살린다.대전시립박물관은 특별전 광복, 다시 없는 기쁜 일을 통해 이러한 항일운동의 현장을 간단히 소개하며, 시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특히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 네 명의 삶은 광복의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기게 한다.송구용(1884~1950)지역을 지킨 조용한 지도자송구용은 대전 지역에서 활동한 지식인 독립운동가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항일 격문을 배포하며 군자금을 모집했다.그는 지역 기반의 항일운동을 이끌며 대전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끝까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헌신했다.조용한 지도자로서 그의 활동은 대전 독립운동의 뿌리를 형성했다.강산 김용원(1892~1934)총과 태극기를 든 실천가김용원은 대전 서구 원정동 출신으로, 31운동 참여 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원으로 활동했다.그는 의친왕 탈출 공작, 군자금 모집, 일본 경찰 사살 등 무장투쟁을 병행하며 실천적 독립운동을 펼쳤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병사한 그의 삶은 행동으로 일관된 항일 의지의 상징이다.한편, 대전지방경찰청은 강당을 김용원홀이라 이름 붙이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단재 신채호(1880~1936)역사를 무기로 삼은 사상가단재 신채호는 대전 중구 어남동 출신으로, 언론인역사학자사상가로서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그는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 날카로운 논설을 통해 일제의 침탈을 비판했으며, 신민회 활동과 중국 망명 이후에도 민족사관을 정립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여순감옥에서 순국한 그의 유언,내 유해를 일제가 밟지 않게 해달라는 말은 지금도 강한 울림을 남긴다.천영관(1919~1965)교복 입은 혁명가천영관은 대덕구 출신으로,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했다.그는 명랑클럽을 결성해 동지들과 함께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격문을 배포했으며, 체포 후에도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교복을 입은 혁명가로서 그의 젊은 열정은 광복의 불씨가 되었고, 오늘날 청년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대전시는 건국훈장 애족장과 대통령 표창, 대전광역시장 표창 등을 통해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미래 세대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대전의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며,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할 때 그 정신은 더욱 빛난다.광복 80주년,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우리는 묻는다.우리는 이 자유를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글 정수빈 기자
등록일
2025-09-03 16:14:16
[551호] 처음이라는 이름을 벗으며
작성자
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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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순간의 충동과 흥미에서 비롯되었고, 존경과 설렘으로 국자 신문사에 지원서를 넣기로 결심했다.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실감한다. 익숙해졌음에도 그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을 느낄 때면 내가 아직 수습기자임을 자각하게 된다.초반에는 처음이라는 말에 기대어 나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했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아직은 배워가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초보자라는 명찰 뒤에 숨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습기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 짧고 굵었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한 편의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말이다.아이디어를 내고, 현장 조사를 하고, 기사를 쓰고, 또 퇴고하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신문이 된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경험은 현장에 나가는 일이었다. 기자 선배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는 일은 정말 새로웠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연예인을 가장 빛나도록 카메라에 담는 경험, 그 현장과 분위기 모두 잊지 못할 순간이다. 내 마음은 카메라의 무게만큼 열정과 희열로 차올랐다.이 외에도 신문사에서 가장 민감하게 다뤄야 할 것이 시간임도 깨달았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 기자에게 있어,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하거나 지체된 기사는 신문의 본질을 훼손한다. 그래서 나는 미루는 습관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로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무엇보다, 기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기사를 직접 써보면서 기사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며 매 순간 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끝으로 내가 되돌아보았을 때, 이 순간이 내게 빛나는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단순히 기사를 쓰는 사람을 넘어, 신문사의 일원으로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비록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처음이라는 이름을 벗고 더 나은 나를 위하여 나아가고 있다.글 박희진 수습기자
등록일
2025-07-03 13:25:49
[551호] 대학생이 된 나 – 수습기자의 첫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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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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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학문 습득의 장을 넘어, 다양한 관점이 교차하고 확장되는 새로운 세계다. 그 안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문화가 산업으로, 콘텐츠가 시장 논리로 연결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어릴 적부터 예술은 삶의 일부였다. 감정을 담아 춤추고 노래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험은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문화의 힘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K-POP을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끄는 모습을 접하며, 문화가 감성의 영역을 넘어선 경제적 주체임을 인식하게 됐다.특히 K-콘텐츠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식, 그 이면에 작동하는 자본과 시스템에 관한 문제의식은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의미를 가지며,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질문은 문화와 경제를 함께 조망하는 시선을 키우게 했다.이 과정에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맥락을 읽고 구조를 밝히며 의미를 전달하는 일. 기자가 바로 그 교차점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국자 신문사의 수습기자 모집 공고였다.대학 언론은 정보 전달의 역할을 넘어, 동시대 학생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통로다.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야를 키우고자 한다.기자가 지녀야 할 핵심은 명확하다. 정확한 팩트에 기반한 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그리고 균형 잡힌 관점.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고 관찰하며, 작은 사실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록자가 되고자 한다.대학 언론의 역할은 단지 뉴스를 전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학생의 시선으로 동시대를 기록하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조명하며, 작지만 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창구가 된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세상의 조각들을 엮어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다. 수습기자로서 마주할 수많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 어떤 시선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며, 대학 기자로서의 첫발을 단단히 디디고자 한다.글 박수현 수습기자
등록일
2025-07-03 13:24:54
[551호] 방황하는 내게 한 걸음 내딛는 크나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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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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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뉴스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때부터다.내가 초등학생 시절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모여서 어떤 영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단편으로나마 느꼈다. 어떻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다시 국민의 손에 내려올 수 있지?,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시민들이 분노하고 모인 걸까? 등 다양한 의구심이 들었고 이를 알아가고자 했다.그 이후로 뉴스를 보며 지식을 넓혀갔다. 뉴스를 꾸준히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마다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 주신 아버지 덕분이 크다. 그렇지 않았으면 기사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금방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뉴스는 하루하루마다 색다른 내용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질리지 않았다.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발전하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재밌었다. 그러던 중 국자 신문사 홍보를 듣게 되었다, 순간 아, 이걸 해봐야겠다 고 생각해 지원하였다. 비록 글을 쓰는 것을 즐겨하진 않지만 적게나마 알고 있는 것들을 학우들에게 더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알리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기사가 우리 대학의 신문으로 남게 된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이후 신문사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더 전문적이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회의하고 주제를 정하며 기사를 쓰고 검토되는 모습은 정통 언론사와 같았고, 완성된 신문 기사를 보니 언론사들이 내는 신문 기사와 견줄 정도라고 생각됐다. 그에 반해 나는 아직 기사를 쓰는 것이 어색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고쳐야 할 부분도 많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기사를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나는 아직 꿈도 없고 목표도 없어서 미래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마냥 불안하다. 아직 1학년이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위안 삼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나로서는 뒤쳐진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나마 흥미와 연관시켜 국자 신문사의 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지 않겠느냔 생각을 해본다.글 권영호 수습기자
등록일
2025-07-03 13: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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