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글로컬 산학일체 혁신대학
과거 한국 사회에서 술은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이었다. 끈끈한 관계 형성과 조직의 결속력을 확인하는 사회적 접착제이자, 때로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꺼이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와 직장 사회를 중심으로 술을 권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마시지 않는 선택’이 자연스러운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술잔을 비우는 속도보다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며, 우리 사회의 음주 지형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헬시 플레저가 바꾼 캠퍼스의 저녁
건강(Healthy)과 즐거움(Pleasure)의합성어인 헬시 플레저는 단순히 건강한 몸을 넘어서 건강한 몸을 통해 누리는 기쁨을 삶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처럼 다음 날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과도한 숙취 대신 운동, 취미활동, 양질의 휴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컨디션 관리자체가 경쟁력이라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음주는 더 이상 친밀감 형성의 필수 조건이 아닌, 개인의 필요에 따라 조절하고 관리해야 할 변수로 인식된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고위험 음주율은12.0%로 전년(12.6%) 대비 0.6%p 감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술에 대한 강요는 줄어들고 있으며, 대학가에서도 과거와 같은 강제적 음주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주량과 의사를 존중하며 과음을 제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시장을 흔드는‘소버 큐리어스’와제로 열풍
소버 큐리어스는 술에 취하지 않은(Sober)과 호기심(Curious)의 합성어로 건강과 맑은 정신을 위해 의식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거나 줄이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소비 시장은 이러한 변화를 기민하게 반영한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주류 매대 명당은 이제 무알코올 맥주와 제로 슈거 제품들이 차지했다. 국내 무·논알콜 맥주 시장은2021년 약 415억 원에서 2023년 644억 원으로 성장했다.
이와 대비하여 20~30대의 주점 소비량도 줄어들었다. 국세청이 발표한‘2025년 12월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간이 주점 사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0.4% 감소했다. 호프주점은 9.5%, 기타 음식점도 5.2% 줄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소비 구조의 질적 변화로 해석된다. 술의 알코올 성분이 아닌 분위기와 맛만을 향유하려는 소버 큐리어스의 등장은 주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들은 술자리 특유의 활발한 에너지는 즐기되, 알코올이 주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거부한다. 따라서 논알코올 칵테일 바나 저도주 전문점이 새로운 대학가 문화 공간으로 떠오르는 현상도 관찰된다.
관계의 농도, 술잔이 아닌 대화
조직 문화의 변화 또한 극적이다.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은 강요 없는 회식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저녁 술자리를 점심 식사나 볼링, 영화 관람 등 문화 활동으로 대체하고 있다. 대학가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폭음으로 얼룩졌던 개강·종강 모임은 이제 유명 맛집 탐방이나 전시 관람, 원데이 클래스 체험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전히 술은 많은 이들에게 긴장을 완화하는 휴식의 도구이자 소통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러나 중요한 변곡점은 음주가 ‘집단적 의무’에서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완연히 이동했다는 점이다.
술잔보다 말 한마디 건네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글 박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