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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58호] 고궁에서 만난 역사의 결, 창덕궁·창경궁·대온실을 걷다

작성자대학신문방송국  조회수41 등록일2026-05-27

지난 주말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창경궁 대온실을 직접 찾았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구경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돌아오는 선조들의 깊은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고궁은 옛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의 상처까지 함께 품은 공간이다. 나란히 이어진 두 궁궐,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 불리며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고, 창경궁 안의 대온실은 근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은 채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 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태종 시기에 세워진 궁궐이다. 조선의 궁궐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미감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가치를 세계도 인정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우리나라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 문을 들어서는 순간, 다른 궁궐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건물들이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고, 길도 직선이 아니라 산세를 따라 굽어 있었다. 억지로 자연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 궁궐을 들인 느낌이었다. 후원을 거닐며 연못과 정자,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공간이 왜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는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됐다.

왕실의 일상이 머물던 창경궁

창덕궁에서 이어진 문을 지나면 창경궁이 나온다. 창경궁은 성종이 왕실 대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옆에 마련한 궁궐이다. 처음부터 생활공간으로 설계된 만큼, 왕과 왕족의 일상이 가장 많이 깃든 궁으로 자리 잡았다. 창경궁을 걷다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웅장한 위압감보다는 아늑하고 조용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 궁궐은 아픈 역사도 품고 있다. 1909년 일제는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이고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이후 1983년 동물원이 이전되고 복원 작업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창경궁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이 한때 유원지였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궁궐 속 이질적인 공간, 대온실

창경궁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공간이 있다면 단연 대온실이다. 전통 건물들 사이에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1909년에 세워진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내부로 들어서자 열대식물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식물원이지만, 이곳이 세워진 맥락을 알고 나면 단순한 식물 공간으로만 보기 어렵다.


창덕궁의 자연 친화적인 배치, 창경궁의 생활사, 그리고 대온실이 품은 근대의 흔적까지. 이번 답사를 통해 고궁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시대의 변화와 상처까지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 현장임을 새삼 느꼈다. 무심코 지나쳤던 돌계단 하나, 문설주 하나에도 수백 년의 시간이 쌓여 있었다. 앞으로 우리 고궁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진 이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