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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27호] 독립유공자 156명, 드디어 공식적인 ‘대한민국인’ 되다

작성자신문방송국  조회수442 등록일2022-09-07

윤동주 시인 및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이 완전한 대한민국인이 되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711윤동주 지사, 장인환 의사, 홍범도 장군, 송몽규 지사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추진하고, “민족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1’로 등록기준지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등록기준지란 예전 호적법에서의 본적을 의미한다. , 156명의 본적은 독립기념관1’로서 대한민국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7월 보도 이후, 국가보훈처는 89가족관계등록창설절차를 마무리했고, 헌정식을 다음날 10일 독립기념관에서 개최했다. 윤동주, 장인환, 홍범도, 송몽규 등 직계후손이 없어 호적이 없는 독립유공자 156명에게 대한민국 적(, 호적 및 신분)이 부여되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윤동주·송몽규 지사 후손 2명에게 가족관계 증명서를 수여했다. 정부가 직권으로 직계 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민족의 빛나는 역사, 조국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치셨던 156명의 독립영웅들께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새로운 고향,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과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으로 모시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무호적 독립유공자에 대한 가족관계등록창설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등 선열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을 구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가족관계등록부창설이 추진되는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 제정 이전 국외로 이주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1945년 광복이전에 사망하여 대한민국의 공적서류상에서 적()을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직계 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들의 가족관계등록이 창설 완료됨에 따라 마침내 156명은 공식적 절차를 마무리 지으면서 오롯한 대한민국인이 되었다.

윤동주 시인

윤동주 시인의 시는 1940년 대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애국시인으로 존경받아왔다. 특히 윤동주 시인이 활동하던 시대에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을 위해 1939년 창씨 개명, 1940년 황국 신민화 운동, 1942년에는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며 민족 의식을 말살시키고자 했다. 이에 윤동주 시인은 우리 민족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우리 말의 순수한 시적 언어를 사용하고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독립의 소망을 전하며 시로써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1980년대부터 중국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주목받으며 중국과 윤동주 시인의 국적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송몽규 지사

송몽규 지사는 윤동주 시인의 사촌 형으로, 윤동주 시인 묘의 왼쪽으로 1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에 묘지가 위치해있다. 윤동주 시인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송몽규 지사는 윤동주 시인의 정신적 지지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송몽규 지사는 1935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떠나 김구 선생이 독립전쟁에 참여하는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인 중국 낙양 군관학교 한인반 2기생으로 입교하여 민족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장인환 의사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익하다라는 제목의 친일성명서를 발표한 스티븐스는 한국에 이완용과 같은 충신이 있고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의 큰 행복이요 동양의 다행이다라는 망언으로 면상에 주먹으로 타격을 받았다. 신변의 불안을 느낀 스티븐스는 1908323일 워싱턴을 향해 떠나려 하였으나 23일 오전 930분경 전명운이 스티븐스 안면 왼쪽 볼에 심한 파열상을 입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깨어난 직후 뒤쪽에서 장인환 의사가 권총 3발 중 2발을 각각 스티븐스의 오른쪽 어깨뼈와 아래쪽 복부를 명중시켰고 스티븐스는 이틀 뒤인 25일 사망했다. 장인환 의사는 계획에 의한 일급 모살혐의로 공식 기소되었으나, 우리나라 측 무료 변호인단의 변호로 사형을 면하고 25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글 윤정빈 기자

그림 김지수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