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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559호]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 당신의 선택은?

작성자대학신문방송국  조회수20 등록일2026-07-08

최근 X에서 미스터비스트가 제시한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 논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조건은 단순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비밀리에 두 버튼 중 하나를 누르고, 파란 버튼을 선택한 사람이 50%를 넘으면 모두가 생존한다. 반대로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 빨간 버튼을 누른 사람만 살아남는다.

어떤 사람은 빨간 버튼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본다. 다수의 선택과 관계없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되는 주장이다. 파란 버튼은 타인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선택을 무조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빨간 버튼만이 유일한 합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인의 시선에서는 빨간 버튼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공동체의 시선에서는 파란 버튼 역시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파란 버튼은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까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선택에 가깝다.

특히 모두가 빨간 버튼을 누르면 다 살 수 있다는 주장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사실상 100%가 같은 선택을 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갖고 같은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반면, 파란 버튼은 모두가 누르지 않아도 50%만 넘기면 모두가 산다. 모두의 생존 가능성만 놓고 보면, 100%의 일치를 기대하는 것보다 50%를 넘기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 논쟁은 능력주의와 복지의 관계와도 닮아 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회에 필요한 가치다. 문제는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될 때다. 한 번 승리한 사람은 더 많은 자본과 기회를 얻고, 그 우위는 다음 승리로 이어지기 쉽다. 반대로 한 번 밀려난 사람은 다시 출발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회는 세금을 걷고 복지를 제공한다. 복지는 약자에게만 주어지는 시혜가 아니라,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국가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공교육, 건강보험, 도로, 치안, 소방, 법 제도와 같은 공공 시스템 위에서 살아간다.

파란 버튼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누군가는 실수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체적·인지적 어려움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사회는 완벽한 개인들이 모인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파란 버튼은 개인의 불완전함까지 고려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파란 버튼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언제나 강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누구든 약자의 자리에 놓일 수 있기에,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선택은 단순한 선의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모두를 위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물론 빨간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생존 앞에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우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판단이다. 문제는 어느 버튼을 눌렀느냐보다 상대의 선택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빨간 버튼을 누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파란 버튼을 누른 사람을 어리석다고 조롱하는 것도 옳지 않다.

실제 최종 투표 결과는 파란 버튼 56%, 빨간 버튼 44%였다. 이 결과가 파란 버튼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다. 다만 파란 버튼 역시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결국 이 논쟁이 남겨야 할 질문은 어느 버튼이 정답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다른 합리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점이다.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자신과 다른 선택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 양경찬 수습기자

그림 황수빈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