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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하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소련을 대표하는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 중 하나였다. 그의 음악가로의 자질이나 성과와는 별개로, 소련 시절 활동한 그의 이름 옆에는 항상 소련 체제에 편승하거나 남몰래 비판했다는 식의 평가들이 뒤따른다.
작가인 줄리언 반스는 그런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재창조했다. 소설 <시대의 소음>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상상의 영역 속을 과감하게 누빈다. 작품 속에서도 현실과 같이 쇼스타코비치는 음악가로 대단한 명성을 누린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항상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소련이라는 사회 체계 아래서 여러 번 위기를 겪는다.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는 그가 작곡한 오페라를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수위 높게 비판한다. 당대 프라우다는 곧 당의 목소리였기에 이 기사는 곧 그의 커리어에 대한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의 모든 작품은 소련 전역에서 연주가 금지되고, 곧이어 지인들이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숙청되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
그는 자신이 체포될 것을 우려하며 매일 밤 정장을 입고 짐을 챙겨 현관 앞에 앉아 밤을 새운다. 파멸이 예정된 자신이 체포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지 않고 품위 있는 최후를 맞기 위해 행하는 무의미한 저항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결국 “당분간 그는 살아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교향곡 5번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을 작곡해 위기에서 살아남는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쇼스타코비치의 시점을 창조했다. 그는 예술가였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기에 결국 권력 앞에서 항복한다. 작품 속에서 그는 평생 동안 후회와 번민 속에서 고통받는다. 그렇게 그의 목소리를 빌려서, 순간에 끝나 버리는 용기와 저항만큼이나 비겁자의 삶 역시 고통스러운 것이라 항변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당대 소련 치하의 예술가를 대표하는 매개일 뿐이다. 작가는 결코 비겁한 삶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저 성공한 이후에도 생존하기 위해 당의 명령을 따르는 그의 심리를 묘사해 독자가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고통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국가가 예술을 탄압하던 냉전 시대의 생존자들의 고통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가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시대의 혼란 속에서 살아남고자 한 인물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논란 속에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스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소련 치하에서 고통받는 한 명의 인간을 본다.
그렇게 인간의 자유의지가 진정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살아남는 예술을 기원하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글 원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