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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잊을 만하면 보이는 게시글의 주제가 있다.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글이 올라오면 네티즌들은 다양한 경험을 예시로 들며 각축을 벌인다.
이들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공감 역시 지능이며 본인이 사회에서 겪었던 ‘공감 지능이 낮은’ 사람들로 인해 겪었던 불편들을 늘어놓는다. 이 주장은 곧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가 얼마나 극한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준다.
연세 한국어 사전에서는 지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능: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지적 능력.” 이 정의에 따르면 공감 역시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을 지능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해로 시작해 결국 혐오와 몰이해를 낳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감을 지능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이 주장의 문제는 결국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주장이 결국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감이 지능이라는 주장을 통해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우선 자신들에게 공감하지 않는 이들을 악한 존재인 동시에 공감 지능이 낮은 열등한 존재로 타자화한다.
이어서 자신들은 윤리적 우위에 선 존재인 동시에 공감 지능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월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분명 공감은 이타적 능력일 것인데,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문장에서 공감은 지독하게 차가운 아집단의 비교 우위를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다. 이는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니지 않은 사람을 혐오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심각한 모순을 보여준다. “공감도 지능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선행은 ‘공감 지능’을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위선적 행위가 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배경을 이해해 보자면 결국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자유롭게 경쟁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성장하며 능력, 즉 지능에 따라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며 능력주의가 학습된다. 결과적으로 이들 중 일부는 결국 인간의 감정마저 경쟁하고 비교해 우열을 가려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곧 공감 지능이 낮은 것, 그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악한 것으로 여기는 극한의 엘리트주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지능이 낮다는 말을 들어 마땅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악인에 대한 폭력을 예시로 삼는 것은 잘못되었다. 타인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자 하는 이들이 행하는 폭력은 교묘히 숨겨져 있다. ‘공감 지능이 낮은’ 사람들에게 행할 폭력의 주체를 숨기고 그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난이나 처벌을 결정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능력이 아닌 행위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들은 공감이라는 행위의 자유 역시 빼앗는다. 공감이란 것은 개인의 가치관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선택적 행위이며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 영화 속 비극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지구 반대편 전쟁에는 눈을 감는 게 인간의 마음인데도, 자신이 살아가는 소세계에서의 경험만으로 타인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공감은 우리의 감정에 속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임에도, 공감 지능의 우열을 나누며 감정의 자유조차 빼앗고 있다.
결국 이런 논리는 인간의 감정을 도구화하는 동시에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인간의 사고하고 감정을 느낄 자유조차 빼앗는다. 그렇게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주장은 공감이라는 인간의 감정적 능력을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척도로 격하시킨다.
물론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주장이 오로지 악한 의도만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몇 번이고 이기적이고 악한 이들과 부딪히면서 나온 체념과도 같은 논리일 것이다. 공감하는 이들이 공감하지 않는 존재들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에는 정답이 없
으므로 나는 당신이 “왜 공감하지 않느냐”라고 묻지는 않기를 바란다. 이 세상의 선의를 공감 지능 따위의 단어로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공감 지능이 얼마나 낮은지 높은지는 상관없다.
서로를 배려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지능이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된다.
글 원지형 기자